19세기의 유명한 외과의사는 사실 여성이었다

19세기 의학계가 세운 업적을 이야기할 때, 이 전설적인 외과의를 빼놓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그의 사후에 밝혀진 사실로 인해 모든 업적이 묻혀버렸지만. 

그가 이룬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는 바로 병원 위생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 결과, 그가 진료한 환자들의 생존율은 유례 없이 높았다. 특히 비위생적인 수도 시설과 배설물 처리 방식이 전염병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당시 아프리카 대륙을 휩쓸고 있던 콜레라와 나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제왕 절개 시술로 산모와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낸 최초의 의사이기도 했다.  

1865년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를 준비하던 간호사는 시신을 덮고 있던 천을 들추며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발견했다. 

Youtube/The Irish Audio Project

제임스 미란다 배리(James Miranda Barry)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에든버러 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에 입학한 것이다. 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명문 에든버러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자원봉사를 하면서 외과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이어나갔다. 

학업을 마친 후, 군의관으로 자원입대한 그는 당시 영국이 지배하던 수많은 식민지를 돌며 근무했다. 자메이카, 인도, 크림 반도 그리고 남아프카 공화국에서 쌓은 업적에 힘입어, 외과의로서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그가 부임한 곳마다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의료 시설이 전무하던 곳에 병원이 세워졌고, 콜레라 확산이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담당한 외과 시술은 대부분 성공으로 끝났다.

그 결과, 그는 군의관으로서 최고의 자리인 국군 병원 감찰관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는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총독 찰스 서머셋(Charles Somerset)과도 친분이 있었다. 이토록 승승장구했던 그가 세운 찬란한 업적들은 그의 사후에 밝혀진 사실 하나로 단번에 묻혔다.

영국 최고의 군의관 제임스 베리(James Barry)는 사실 여자였다.  

facebook/East End Women's Museum

제임스 베리의 본명은 마거릿 앤 벌클리(Margaret Ann Bulkley)였다. 1789년 아일랜드 코크 지방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다. 그녀의 삼촌 제임스 베리(이후 그녀는 이 이름을 쓰게 되었다)와 삼촌의 절친한 친구였던 프란시스코 미란다(Francisco Miranda, 베네수엘라 출신의 독립운동가)는 일찍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여성이 의학 배우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기에, 마거릿은 남장을 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거릿은 삼촌의 이름을 물려받았고, 프란시스코 미란다는 그녀가 의학 공부를 마치면 베네수엘라로 데려가기로 약속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여성도 의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가 스페인 정부에 체포되면서, 그들의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프란시스코는 스페인에서 감옥살이 도중 사망했고, 마거릿은 그때부터 평생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살아야 했다. 

facebook/London Town Tours/a>

자국에서 정체가 탄로 날 것을 대비해, 마거릿은 군의관 입대 후 식민지로 건너갔다. 타지에 머물며 용케 여성임을 숨겼지만, 그녀의 성격과 독특한 행동 방식은 번번이 문제를 일으켰다. 자신의 남성성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과 권총 대결을 벌이는가 하면, 찰스 서머셋 총독과의 친분이 동성애 관계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명예훼손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후에 뒤늦게 밝혀진 성별로 인해, 이 유명한 외과 의사의 업적은 제때 빛을 보지 못했다. 위생 및 살균과 관련한 그녀의 연구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는데도. 

Youtube/The Irish Audio Project

1864년 퇴역한 뒤 영국으로 돌아온 직후, 그녀의 건강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거릿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고, 오늘날에 와서야 그녀가 세운 업적을 인정받게 됐다. 마거릿 앤 벌클리는 영국 최초의 여성 의사였다. 현대 의학에 한 획을 그은 그녀의 결단력과 재능, 뛰어난 지성과 강인함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거릿의 사후,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간호사는 복부에서 임신한 흔적도 보았다고 한다. 이 저명한 외과 의사가 한 명 이상의 후손을 남겼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현재까지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곳에서 마거릿 앤 벌클리의 이야기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의학은 마거릿 앤 벌클리와 같이 알려지지 않은 선구적인 여성들의 공헌으로 지대한 발전을 이룩했다. 물론 지금도 수많은 여성 의학자들이 도처에서 활약 중이다. 다행히 예전과 같은 극단적인 반대에 부딪힐 걱정 없이 말이다. 
소스:

El españ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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