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청년이 전하는 처절한 북한의 현재.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국비로 영국 워릭대 국제관계학 석사까지 마친 이성주 씨. 여기 곱상하게 생긴 젊은 청년이 15년 전만 해도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떠돌던 '꽃제비' 출신이었단 사실, 믿기시나요?

 

'고위 장교 아버지의 정치 숙청, 몰랐던 북한의 진짜 현실'

사실 성주 씨는 소위 북한 '금수저' 출신이었습니다. 고위 장교였던 아버지가 '북한엔 희망이 없다'라는 말실수 하나에 정치 숙청을 당하고 온 가족이 하루아침에 함경북도 경성 군으로 강제 추방을 당했습니다. 부족한 것 없이 평양에서 떵떵 거리던 살던 11살 소년에겐, 전기 하나 들어오지 않는 3평 단칸방,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굶주림에 시달린 아이들의 모습은 전부 '악몽' 그 자체였죠. 이내 아버지는 먹을 것을 찾아 돌아오겠다며 중국으로 떠났고, 어머니 역시 친척집을 찾아가 보겠다며 성주 씨를 버려두고 그렇게 집을 나갔습니다. 

'꽃제비 생활 시작... 살기 위해 훔쳐라.'

홀로 남겨진 어린 소년은 살기 위해 여러 아이들과 무리를 이뤄 경성 장마당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훔치고 성매매를 알선을 돕는 '꽃제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꽃제비 생활에서 성주 씨가 배운 건 바로, '살고 싶으면 훔쳐라'였습니다. 이후 성주 씨는 약 4년 동안을 거리에서 닳고 닳은 신발을 끌고 다니며 사람들의 음식을 훔치고 농장 헛간에서 숨어 쪽잠 자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탈북 성공, 2002년 대한민국 도착'

2002년, 거리에서 웬 남자가 성주 씨의 아버지를 안다면 다가왔습니다. 알고 보니 남자의 정체는 이미 남한으로 건너간 아버지가 보낸 브로커였습니다. 남자와 함께 중국을 거쳐 남한에 무사히 도착한 그는 마침내 아버지와 감격의 재회를 했고, 이때부터 성주 씨의 남한 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한국 정착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해 '문제아'로 낙인찍혔고,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과 함께 끝도 없는 방황이 시작됐습니다. 성주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한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형제’, ‘동포’라고 말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저를 외국인보다 더 못한 취급을 하더군요.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남한이 아닌 '북한' 사람이라면서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한반도인... 가슴속의 불을 지피다.'

지금 성주 씨는 "어디 출신이냐"라고 묻는 외국인들의 질문에 남한도 북한도 아닌 "코리아(Korea)"라고 답합니다. 스스로를 '한반도인'이라고 칭하는 것이죠.

 

나는 #열공중

A post shared by 윤재경 (@yjk0450) on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16살 소년의 가슴 속에 한 가지 꿈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한반도인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방황을 접고 이씨는 검정고시에 매진했고, 서강대학교 졸업 후 영국 국비 유학생 석사 취득, 캐나다 의회 보좌 인턴까지 마치고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북한의 참상을 담은 자전적 소설  펴 내... 각종 수상 휩쓸어.'

그러던 2016년 9월, 성주 씨는 미국 출판사를 통해 '거리 소년의 신발(영문명: Every Falling Stars)'라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영어 소설을 펴냈습니다. 공개처형에서 꽃제비 생활, 탈북기까지...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성주 씨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2010년, 미국 어학연수 시절, 청소년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정불화, 마약, 총기사고 등으로 가출한 청소년들과 교류하게 된 성주 씨. 그는 아이들에게 우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많은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널리 전한다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을 써 나가기 시작했고, 그의 책은 지난해 말 미국 학부모 협회 권장도서상 은상을 수상하며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희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는 성주 씨는 탈북자 구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국제관계학의 갈등과 해결을 연구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입니다. 그는 언젠가 찾아올 통일에 대비해 남북한 사람들의 정서 차이를 줄여나가는 데 작은 기왓장 하나라도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히며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언제가 뵐 어머니께서... 이런 제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요?"

정말 자랑스럽네요! 과거의 역경을 딛고 '한반도인'으로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꿈을 당당히 펼치고 있는 성주 씨의 밝은 미래를 응원합니다.

Comments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