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나올까 말까]

얼마 전, 유명 독일 축구 리스,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레전드 멤버(정식 명칭: 네트워크 엠버서더) 중 1명이 '한국인' 축구 선수로 선정됐다. 선수의 이름은 차범근, 독일인들에게는 갈색 폭격기, '차붐'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국 축구의 전설적 인물이다.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차범근은 약 300번이 넘는 경기를 뛰며, 통산 98골을 기록해 은퇴 당시 외국인 통산 득점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98골 중 패널티 킥은 단 1골도 없었고, 경고는 단 1장만을 기록했다. 현직 시절 무려 두 번의 UEFA컵(구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는 프랑스 잡지인 풋볼 선정 세계 축구 4대 인물(마라도나, 펠레, 베켄바우어, 차범근)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기까지 했다.

때는 1976년, 촉망 받던 대한민국의 젊은 축구 선수는 선진 축구를 배우고 싶었다. 당시 최고의 축구 강국은 독일로, 분데스리가는 차범근이 동경하는 꿈의 무대였다. 하지만 독일 축구 협회에선 대한민국 최고 선수로 칭송받던 차범근에게 '테스트' 기회만을 부여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국 정부와 언론은 차범근의 서독 진출이 나라를 저버리고 가는 행위라며 매도했다. 

그러나 젊은 축구인의 열정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 차범근은 힘겹게 대한민국 축구 협회의 허락을 받아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테스트에도 열심히 임했다. 모름지기 실력은 드러나는 법, 당시 독일 다름슈타트의 감독이었던 로타 부흐만(Lothar Herbert Matthäus)은 차범근이 경기를 뛰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주변의 만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동양의 선수를 단숨에 영입, 경기에 투입했다.

이러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차범근은 첫 경기에서부터 소위 '대박'을 터트린다. 심지어 당시 독일 언론은 '대한민국에서 온 선수의 인기가 대단하다'며 차범근을 대서특필 했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 남북 간 이념대립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로, 1966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북한 축구를 이기는 건 남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서독에 있던 차범근을 군대 문제를 핑계로 본국으로 강제 소환했다. 여기에 뿔이 난 국민들은 '차붐을 독일로 다시 보내야 한다'며 정부를 매섭게 비난했고, 이에 차범근은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양발로 번갈아 드리블을 하며, 사각지대에서도 슛을 성공시키는 그의 저돌적인 플레이에 분데스리가 선수들은 강한 파울로 그를 막기에 급급했다. 결국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소속 당시, 상대팀 레버쿠젠 소속의 겔스도르프(Jürgen Gelsdorf) 선수에게 태클을 당해 척추에 금이 가는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영영 축구를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까지 내려졌다. 하지만 그는 방송에서 겔스도르프 선수를 용서하고 고소를 하지 않겠다고 말해 다시 한 번 독일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80er Helden: Cha+Grabowski

1983년, 프랑크프루트를 떠나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차범근. 건재를 과시하듯,  85~86 시즌 자신의 최다 득점인 17골을 터트리며 분데스리가 MVP에 올랐다. 당시 레버쿠젠 CEO는, "(비록 외국인이었지만) 차범근은 독일 젊은 축구 선수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고 차범근을 높이 평가했다. 이후 86~87 시즌 UEFA컵 결승에서 결정적 골을 넣으며 레버쿠젠의 승리를 이끈 그는 두 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독일의 축구 전설, 차붐은 약속했던 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가슴 속에 또 하나의 꿈이 있었다. 바로 '유소년 축구 교실'을 열어 축구 명문 유럽 열강들처럼 훌륭한 축구 선수를 조기에 육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차범근 축구 교실'은 큰 화제를 일으키며, 축구는 '엘리트 스포츠'라는 오명을 벗으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귀국 후, 유소년 축구 교실을 비롯해 국내 축구팀 감독을 맡으며 차범근의 전성기는 그렇게 잊히는 듯 했다. 그러나 2008년, 독일 레버쿠젠과 코트부스와의 리그 17경기가 진행되며 구장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화면에 비친 중년 동양인 남성의 모습에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차범근이었다.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그에게 예우를 표했고, 그는 수줍은 미소로 화답했다. 독일인들의 마음 속에 차범근은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차범근이 전설적 존재임을 알려주는 전 세계 축구 유명인들의 말이다. 

"난 차붐 선수를 존경한다. 어릴 때 부터 차붐을 보고 자랐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 마이클 오웬(Michael James Owen,영국 전 축구 선수)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미하일 발락(Michael Ballack, 독일 전 축구 선수)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가 독일인이라면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 베켄바우어(Franz Anton Beckenbauer, 독일 전 축구 선수)

"당신에게 사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는 제게 정말 큰 영광입니다."
- 올리버 칸(Oliver Rolf Kahn, 독일 전 축구 선수, 골키퍼)(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웅이다."
- 루이스 피구(Luís Filipe Madeira Caeiro Figo, 포르투갈 전 축구 선수)

"내 자신은 어느 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 정도는 아니다."
- 클린스만(Jürgen Klinsmann, 독일 전 축구 선수 및 감독)

"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 증진이다. 하지만 난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
- 슈뢰더(Gerhard Schröder, 전 독일 총리)

 "우린 차붐을 막을 수 없었다. 해결 불가능한 존재다."
-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독일에 있을 때, 매 경기마다 꼬박 꼬박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던 축구계의 전설은 말한다.

 

"말 없이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던 우리 국민들이 있어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코레아노',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참 열심히 뛰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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